묵상(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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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3,19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존재를 알지 못하는데, 그 알지 못하는 존재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 존재가 사람이던, 사물이던, 신이던 말이다. 출근길 스치는 수많은 것들 중 몇 개나 기억하는가? 관심 없는 세계의 기준에서는 존재하나 나는 그 존재를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의 출발점은 알게 됨이라고 본다. 내가 관심을 갖고 세상을 바라본다고 하여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하느님께서 스스로를 보여 주셨기에 전부는 아니지만, 나는 그리스도를 안다고 이야기하며, 그분을 더 잘 알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2024.10.24 -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2,39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 두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는 내일을 위해서 술자리는 피하면서 하느님과의 사귐에서는 아무것도 준비하려 하지 않는 듯하다. 버릇이 되어버린 식사 전/후기도, 주일미사 등을 아예 하지 않는 것 보다야 나은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시간에 하느님과의 친교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보다 나을 수는 있겠지만, 친구의 진지한 이야기에도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이와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늘 마지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방심하지 말자. 지금이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될수도 있으..
2024.10.23 -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2,38 피곤하다, '오늘은 일이 많을 것 같아 에너지를 비축해야 한다', '바쁘다' 등 다양한 상황을 방패 삼아 하느님과의 시간을 미룬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의 일로 그 만남을 미루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늘 기다려 주시리라 생각하고 있어서 일 것이다. 아니면, 하느님은 일상에서 도망치기 위한 핑계였을지도 모르겠다.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시간을 뒤로 미루려는 방패, 일상의 일들을 회피하기 위해서 하느님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은 아닐까?누군가를 기다릴때, 깨어 기다릴 수 있다. 기다리다 불편한 모습으로 잠이 들 수도 있다. 밤늦게 들어오는..
2024.10.22 -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이사야서 2,4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 민족과 민족 간의 전쟁, 지역과 지역과의 전쟁, 회사와 회사 간의 전쟁, 사람과 사람 간의 전쟁.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싸우고 있고, 중동에서는 총성이 끊이지 않으며, 남과 북은 대적하고 있다.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며 벌이는 이런 전쟁을 우리는 언제 멈출 수 있을까? 밖으로 표현 하지 못하지만, 서로 간의 WinWin이 아닌 ZeroSumGame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상 절대 멈출 수 없는 전쟁이다. 나 역시 제로썸 게임을 벌이고 있는 이..
2024.10.20 -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2.8 안다고 증언한단 다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유명인을 여러 사람 중에 구분해 낼 수 있다고 해서, 그 유명인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해서 내가 그를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안다는 것은 단방향성이 아닌 양방향성을 지닌다. 내가 그를 알고, 그도 나를 알고 더 나아가 그와 닮아가는 삶을 살 때 그때서야 나는 그를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당신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삶을 통해서 당신을 안다는 것을 증거해야 하는 과정이며, 그 증거의 삶을 보시고 '너는 나의 제자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
2024.10.19 -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0.6 속 좁은 나로서는 이 말이라도 있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에게 평화를 빌어주려 노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나름 착하게 살려하고, 타인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이유가 하느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라고 말하지만, 세상 풍파속에 찢기어진 피해의식이 불쑥 올라오는 날에는 내가 왜 그에게 평화를 빌어주어야 하는지를 하느님께 질문하곤 했다. 그때 나에게 들려 주신 이야기는, 너의 노력으로 인해 그가 조금이라도 바뀐다면 내가 창조하고 보시니 좋았다고 말했던 세상의 모습과 조금은 닮은 세상을 이 땅에서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그바램과 같은 그런 꿈을 꿔 본다...
2024.10.18 -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1,3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직장에서 던져지는 일들을 처리하려, 제로썸 게임에서 숫자 하나라도 더 가져오려 지내다 보면 결국 먹고사는 문제라는 핑계로 하느님은 어디에도 없다. 집안에 틀어 박혀 보고 있는 TV소리에 그렇게 고대하던 가뭄 속 단비가 내리는지 모르는 농부와 같다고나 할까? 이렇게 외면해 버린 복에 대한 책임은 결국 내가 져야 함을 알지만, 내리는 비에 선듯 맨발로 뛰어나가지 못함은 결국 옷이 젖는 것이 싫어서가 아닐까? 하루를 살다가 복음을 읽고 몇 줄 묵상을 쓰는 이 순간에서야 하느님을 생각하는 나는 ..
2024.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