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2024. 10. 22. 13:00렉시오 디비나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2,38 

 

피곤하다, '오늘은 일이 많을 것 같아 에너지를 비축해야 한다', '바쁘다'  등 다양한 상황을 방패 삼아 하느님과의 시간을 미룬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의 일로 그 만남을 미루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늘 기다려 주시리라 생각하고 있어서 일 것이다. 아니면, 하느님은 일상에서 도망치기 위한 핑계였을지도 모르겠다.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시간을 뒤로 미루려는 방패, 일상의 일들을 회피하기 위해서 하느님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를 기다릴때, 깨어 기다릴 수 있다. 기다리다 불편한 모습으로 잠이 들 수도 있다. 밤늦게 들어오는 이를 위해 거실 불을 켜 놓고 잠자리에 들 수도 있다. 이런 기다림이 있다면, 어떤 경우이던 기다리던 이가 '짠~'하고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눈을 똥그랗게 뜨고 기다리지 못했어도 언제 졸았냐는 듯 문 앞으로 뛰어 나가 반갑게 맞이한다. 

반대로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깨어 있어도 얼굴도 보지 않고 '왔어' 한마디가 대화의 전부일 수 있고, 그나마도 자리를 피해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이렇듯 깨어 있음은 육체적으로 깨어 있다, 깨어 있지 않다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늘 하느님을 생각하고 있다면, 내가 어떤 상황에 있다고 하더라도 깨어 있는 것이고, 내가 하느님을 잊고 있다고 하면 육체가 깨어 있어도 내 옆에 와서 말을 걸어 주시는 그분을 알 아 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어느 상황에서든 하느님을 기억할 나만의 방법을 찾아 보자. 그것이 노트 앞표지에 붙여 놓은 스티커든, 책상 위에 놓아둔 십자고상이던, 주머니 속에 묵주던, 책갈피 대신 끼워놓은 상본이던, 포스트잇에 적어 놓은 성경구절이던, 스마트폰 속에 생활성가 MP3이던, 입고 있는 스카폴라이던, 목에 걸고 있는 십자가 목걸이이던, 손가락에 끼고 있는 묵주반지이던, 무엇이든 상관없다. 수시로 당신이 접할 수 있는 곳에 하느님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만들어 놓는 것이 첫 번째. 두 번째로는 그 상징들에 익숙해지지 않을 것. 손가락에 늘 끼어있는 묵주반지를 보면서도 그분의 수난을 떠올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액세서리로 끼는 반지와 다를 것이 없으니 말이다.

늘 깨어있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말자. 당신을 기억하려고 하는 우리의 노력만으로도 우리를 어여쁘게 보아주시지 않을까?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더 많은 시간 그분을 기억하고 함께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녹]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2024년 10월 22일 화요일 독서와 복음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