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그리고 나(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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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가 와서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마태오 복음 13,25 삶 속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이 한두 가지 더냐. 대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게임에서 손을 놓지 못한다거나, 버릇적으로 미사 중에도 카톡을 확인하는 것 등 하느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원수가 하나는 아닌듯 하다. 그 원수들은 가라지만 뿌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다양한 것들을 내 속에 뿌리고 지나가 내 안에 있는 것을 나도 모르게 만들어 버렸다. 이 중에서 밀을 제외한 나머지 들을 어떻게 뽑아낼 것인가 라는 숙제는 늘 남아 있는 듯하다. 제초제를 뿌리듯 한 번에 싹 제거해 버릴 수는 없는 듯하고, 하나하나 뽑아 나가야 할 듯한데, 긴 작업이 될 듯하다. 이 긴..
2024.07.27 -
좋은 땅에 뿌려진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마태오 복음 13,23 욕심이라고 말해도 좋다. 나도 열매를 맺는 사람이고 싶다.백 배, 예순 배, 서른 배 보다 작더라도 열매를 맺는 사람이고 싶다.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가능한 이 열매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매일 미사 때 봉독되는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을 잊지 말자. 어떤 날은 피곤해서, 졸면서 읽게 되거나, 딴짓을 하게 되어도 그래도 빼먹지 말고 읽고 묵상해 보자.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2024년 07월 26일 금요일 독서와 복음 바로가기
2024.07.26 -
절망하지 않으며,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4,8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절망하지 않는다. 사실 절망하고 싶은 상황이 닥치기도 하지만, 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이 말들을 기억해 낸다. 하느님을 창과 방패로 전쟁에 나서는 병사들처럼. 이 구절에 눈이 머문 것은 지금의 상황이 절망까지는 아니더라도 HAPPY 하지 않은, 피하고 싶은 상황을 당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있는가? 왜 피할 수 없으면서 고민하느라, 심란한 마음으로 아무것도 하고 있지 못하는가?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이면 좋은데, 이런저런 이벤트 속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음을 만나게 되면 모든 것이 STOP인 상태가 된다. 절망하지 않음은 절망하지 않음으로 끝나면..
2024.07.25 -
열매를 맺었는데,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마태오 복음 13,8 나는 몇 배의 열매를 맺을 것인가? 아니지, 뿌리부터 내려야지.사실 이곳이 길인지, 돌밭인지, 가시덤불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뿌리를 내리고 살아 보련다.삶의 끝자락에서 몇 배의 열매를 맺었는지는 내가 아닌 그분이 샘 해 주시겠지. [녹] 연중 제16주간 수요일2024년 07월 24일 수요일 독서와 복음 바로가기
2024.07.24 -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마르코 복음 6,5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하느님일까? 사람일까?많은 사람들이 작은 일에도 기적을 이야기한다. 나는 그것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개개인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 주고, 하느님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좀 다른 듯 하다. 기적을 보기 드문 케이스라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이야기하고, 또 다른 이는 우연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굳이 기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냥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쉽게 생각해 내가 기적이라 믿으면 기적이고, 선물이..
2024.07.07 -
올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오 복음 9,15 죽음을 생각한다. 언젠가 분명히 올 날. 하지만, 언제일지 알 수 없는 날. 천수를 누리기를 원하지만 뉴스의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내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고 불안해할 것인가? 내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불안해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내일 죽을지 모를 나를 슬퍼하는 것보다. 하느님이 주신 오늘에 감사하며 기뻐해야 할 것 같다.깊이 묵상하고 하느님의 사업에 참여하며, 기뻐하고 즐거워 하여라. 지금 살아 있음에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음에. 그것이 이곳에서 ..
2024.07.06 -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5 종이컵에 물을 담아 책상에 부어보자. 그 물은 어디에 있는가? 분명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이렇게 부어진 하느님 사랑은 어디 있을까? 내가 모래사장인 듯 모든 것이 빠져나가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듯 보인다.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하루하루 도시의 정글에서 생존하기에만 급급한 하루살이가 된 나에게 남는 것은 없다.이곳이 도시의 정글이 아닌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만,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만 있는 장소라면 지금의 상황이 바뀔까? 그렇지 않을 듯 하다. 변화 없는 하루살이의 삶은 죽음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
2024.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