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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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예언자의 표징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29 요나가 한 일이라고는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요나 3,4)"라고 외친 것이 전부였다. 나는 이 예언자의 외침을 들을 귀가 있는가? 듣는 마음이 있을까? 그냥 흘려듣고 사십일 뒤에 멸망에 순간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지구온난화를 비롯하여 많은 목소리들을 듣는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기사들에는 혹해 하면서도, 멸망의 예언은 모두 걱정은 하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날이 내일 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이단들의 유언비어들에 지쳤을 수도 있지만, 요..
2024.10.14 -
이 말씀 때문에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10,22 내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많은 것을 가진 이가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주변의 많은 경우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어떤 것 때문에 그분 안에 머물기를 어려워 할까? 매일을 반성하며 저지르는 비슷비슷한 잘못들. 그것을 끊어 버리지 못하기에 온전히 그분 안에 머물지 못하는 것 같다. 내려놓지 못하는 욕심, 내려올 줄 모르는 자만, 내 눈 안에 들보는 보지 못하는 타인에 대한 지적질, 이웃을 외면하는 부족한 사랑. 당신의 완벽함을 쫓아 가기에는 멀기만 한 나의 모습에 나는 울면서 이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것..
2024.10.13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28 그분을 따르는 우리의 삶은 답이 정해져 있다. 최종 목표는 '천국에서 별처럼'.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삶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삶'. 얼마나 명확한 목표와 답인가? 모든 것이 명확해서 참 좋다. 실천하기 어려운 것만 빼면 말이다. 그분의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기까지, 마음으로 느끼기까지, 실천하기까지의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며, 어떤 사람은 평생을 거쳐 머리로 이해하기까지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이방인들과 그 이방인들을 동경하며 왜 이방인처럼 우리는 살 면 안 되는 가에 대한 답을 찾다가 그쳐버리는 그런 삶 말이다.한 줄 질문이 주..
2024.10.12 -
선행을 거절하지 마라.
내 아들아, 네가 할 수만 있다면 도와야 할 이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마라. 잠언 3,27 나의 배려를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고, 접하는 기사는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정도가 아니라, 갖고 있지도 않았던 금거북이가 사라졌다고 도둑으로 몰리는 상황의 이야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도와야 할 상황이 생기더라도 반사적으로 누군가를 돕기보다 일단 쉼표를 찍고 판단을 하려는 것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를 도움으로써 내가 피해를 당할일은 없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행'이라는 단어는 점점 죽은 단어가 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결국은 '이 땅에 주님의 나라를'이라는 기도가 무색하게 서로가 벽을 쌓는 세상이 만들어져 가는 것 같다. 하느님 나라..
2024.09.23 -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보 2,14 일상에서 말뿐인 위로를 많이 봅니다. 위로가 아닌 안부 인사에도 이러한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명절에 단체 문자로 오는 안부는 결국은 스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사랑은 없습니다. 위로는 없습니다. 전하는 사람의 자기 만족만이 있을 뿐입니다. 상대가 어떻하던 상관없이 의무를 다했다, 예의는 지켰다는 그런 자기만족 말입니다. 점점 더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예의를 차리는 인사마저 없다면 더 각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안에 진심이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말 한마디에 빵 하나를 더할 수 있는 행동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
2024.09.15 -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6,36 우리가 아버지를 따른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 타인들은 우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성당에 다닌 다는 새끼가..."라는 말을 듣는 행동하고 있지는 않으시겠지요? 우리의 행동이 하느님을 욕보이게 하는 행동임에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겠습니다. 타인의 생각이 어떨지를 재면서 살아갈 필요는 없지만, 기억합시다. 나이가 들면서 강퍅해지지 않기. 어제보다 자비로운 사람 되기. 콘크리트 정글 속 자비롭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 성경 구절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녹]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2024년 09월 12일 목요일 독서와 복음 바로가기
2024.09.12 -
골이 잔뜩 나서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6,11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참 하느님으로 믿고 있을까요? 분명 믿고 있다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날인 주일을 지낸 우리는 행복해야 할것입니다. 하지만 주일을 지낸 오늘 어제의 일을 생각하면, 내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냈다는 생각이 없는 이유는 무엇을 일까요? 미사를 드렸고 성당일을 했습니다. 네. 일입니다. 성당에서 하느님과의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일을 했습니다. 힘들고 피곤하고 그래도 성당일을 했다고 위안을 삼습니다. 하지만, 그 일들이 하느님과 어떤 상관이 있을까요? 하느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이웃 사랑이 아닌 상처를 받으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
2024.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