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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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고 와서,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7,32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간 이들은 누구였을까요? 친구? 친척? 잘은 모르지만 두 가지는 알겠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였던, 강한 믿음이었던, 예수님께 데려가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과,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불쌍히 여겼다는 것 말입니다. 두 가지를 알았으니, 두가지를 질문해 봅니다. 나는 누구를 불쌍히 여기고 있는가?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줄 이들은 누구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도와줄 사람, 나를 도와줄 사람의 두 가지 영역이 겹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들..
2024.09.08 -
자랑합니까?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4,7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정당함을 밝히기 위하여 우리와 논쟁하지 않으십니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시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따라오기를 바라십니다. 얼마나 길고 지루한 작업일까요? 스스로 깨우치기를 기다리시는 그 긴 시간. 하느님이기에 가능하신 기다림이 아닐까 싶지만, 우리도 그 기다림을 배워야 합니다. 모든 것을 그분께 받았으니, 그분께서 기다리시는대 우리가 독촉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받은 것을 자랑하기에 앞서, 그분을 얼마나 닮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많이 받았으니, 많은 베풀어야 함을 기억합시다. [녹] 연..
2024.09.07 -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2,5 우리 신앙의 출발점은 서로 다를 것입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사람부터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매달린 사람까지. 하느님을 만난 방법은 서로 달랐지만, 우리의 신앙은 그분의 부르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스스로 찾아온 것 같지만 하느님께서 이 길을 예비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감사드립니다.우리의 자유 의지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No"라고 대답했을 수도 있지만, 결국 하느님 안에 머물며 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 초대 받은 행복한 시간. 오늘도 하느님의 축복을 즐겁게..
2024.09.02 -
사람의 전통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7,8 사람이 법을 만든 이후로 법 조항이 늘어만 갑니다. 그것에는 새로운 것 - 이를테면 자동차가 없었던 시대에는, 자동차에 관한 법이 없었다 - 들의 탄생으로 인한 것들도 있지만,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나가는 것들과 애매해서 어느 쪽으로 정하지 못하는 것들을 정하고 싶어 하는 - 답을 정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에 의한 것이리라. 세상의 법이 늘어 갈수록 세상은 더욱 어두워지는 듯하다. 마치 그림에 계속 덧칠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하느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고,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주셨다. 인간이 많든 수많은 법들이 이 법들을 강화해 주었을까? 보완해 주었을까? 그렇지 않..
2024.09.01 -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25,24 10명이면 10명, 100명이면 100명의 하느님에 대한 생각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00명이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고백한다 하더라도,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은 모두 다 다를 테니까요. 나에게 하느님은 구약의 전지전능하신 분, 공정과 심판의 하느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사랑하기보다는 심판을 피하려 계명을 지키려 노력했었습니다. 지금은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수많은 만남을 통해서 사랑의 계명을 알아 가고 있습니다. 나는 어떤 하느님을 상상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2024.08.31 -
손님들 앞이라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마르코 복음 6,26 소신껏 일을 한다고 말하면서도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하는 것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풀어지고 싶은 마음을 붙잡아 주는 용도로는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괴롭지만 억지로 행하여야 하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을 듯하네요.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스스로가 만들어 버린 일, 나의 말 한마디로 인해서 생긴 일, 되돌릴 수 있지만 되돌리지 않을 일.이런 상황들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시다. 이건 아니지 않다 싶다면, 괴로워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을 만들지 않는 하루 만들어 봅시다. [홍] 성 요한 ..
2024.08.29 -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마태오 복음 19,26 하느님께 우리는 많은 것을 원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주시지 않음에 하느님은 없다고 이야기하거나, 왜 나의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냐고 투정을 한다. 선하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이 가능하신데, 그것을 행하시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선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하루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다면, 그분이 보시기에 어떠한지 생각해 보자.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더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인지 말이다. [백]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2024년 08월 20일 화요일 독서와 복음 바로가기
202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