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34)
-
알고 있습니다.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요한 복음 11,24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말씀하신 그대로 그대로 알아듣는다는 것 그것은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봅니다.많은 이들과 하느님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성서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나의 야이기는 나의 얄팍한 지식에 기대어진 아는 척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예수님이 지금 일으키시려는 기적과, 마르타가 지금 이야기 하고 자는 부활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지막 날이 아닌 잠시뒤에 있을 일은 마르타는 알 수 없었겠지요. 우리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직접 보여 주시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의 짧은 앎들을 앞에 내세우며 이야기할 수밖에 없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겠습니다. 그것이 나의..
2024.07.29 -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요한 복음 6,9 우리는 인간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하느님을 재단하지말자. 어짜피 할꺼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고, '주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어보자. 그분의 계획하심을 모르기에 불안한 우리에게 당신의 길을 보여 주시여, 우리가 당신과 더 깊은 친교를 나누며, 당신 뜻을 실천하며 살게 하소서. [녹] 연중 제17주일2024년 07월 28일 일요일 독서와 복음 바로가기
2024.07.28 -
원수가 와서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마태오 복음 13,25 삶 속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이 한두 가지 더냐. 대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게임에서 손을 놓지 못한다거나, 버릇적으로 미사 중에도 카톡을 확인하는 것 등 하느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원수가 하나는 아닌듯 하다. 그 원수들은 가라지만 뿌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다양한 것들을 내 속에 뿌리고 지나가 내 안에 있는 것을 나도 모르게 만들어 버렸다. 이 중에서 밀을 제외한 나머지 들을 어떻게 뽑아낼 것인가 라는 숙제는 늘 남아 있는 듯하다. 제초제를 뿌리듯 한 번에 싹 제거해 버릴 수는 없는 듯하고, 하나하나 뽑아 나가야 할 듯한데, 긴 작업이 될 듯하다. 이 긴..
2024.07.27 -
좋은 땅에 뿌려진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마태오 복음 13,23 욕심이라고 말해도 좋다. 나도 열매를 맺는 사람이고 싶다.백 배, 예순 배, 서른 배 보다 작더라도 열매를 맺는 사람이고 싶다.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가능한 이 열매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매일 미사 때 봉독되는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을 잊지 말자. 어떤 날은 피곤해서, 졸면서 읽게 되거나, 딴짓을 하게 되어도 그래도 빼먹지 말고 읽고 묵상해 보자.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2024년 07월 26일 금요일 독서와 복음 바로가기
2024.07.26 -
절망하지 않으며,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4,8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절망하지 않는다. 사실 절망하고 싶은 상황이 닥치기도 하지만, 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이 말들을 기억해 낸다. 하느님을 창과 방패로 전쟁에 나서는 병사들처럼. 이 구절에 눈이 머문 것은 지금의 상황이 절망까지는 아니더라도 HAPPY 하지 않은, 피하고 싶은 상황을 당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있는가? 왜 피할 수 없으면서 고민하느라, 심란한 마음으로 아무것도 하고 있지 못하는가?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이면 좋은데, 이런저런 이벤트 속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음을 만나게 되면 모든 것이 STOP인 상태가 된다. 절망하지 않음은 절망하지 않음으로 끝나면..
2024.07.25 -
몰랐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요한 복음 20,14 보고도 알아보지 못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듯하다. 구약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당신이 알려주시기 전에는 알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성서를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가장 가까이서 주님을 뵈었던 이들 조차, 당신께서 알려 주시지 않으면 당신이 옆에 계심을 알아 차릴 수 없는데, 우리야 어떠하랴. 그분께서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시지 않으면, 옆에 계심을 알면서도 찾지 못하는 눈뜬장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이런 우리를 불쌍히 보시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기를 조심스레 예수님께 청해 본다. [백]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2024년 07월 22일 월..
2024.07.22 -
달려가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마르코 복음 6,33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어디에 있는가? 그분을 바라보는가? 그분이 가신 곳으로 달려가고 있는가?이곳에 철푸덕 앉아 힘들다 이야기하며, 그분이 오시겠지 하며 감나무아래 홍시 떨어지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입을 벌리고 누워 있는 것은 아닐까? 그분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노력이 얼마나 절실할까? 절댓값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에 나만의 생각으로의 절실은 아닐까?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름의 그분께로 달려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달리기 끝에 그분이 계시리라 믿으며. [녹] 연중 제16주일2..
2024.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