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묵상(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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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마태오 복음 20,12 내가 그들과 같은 처지였다고 하여도, 은근히 바랬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의 기준으로 보기에, 보너스가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듯하다. 여기에서의 이런 바람과 고통도 결국은 누군가와 나를 비교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것이다. 1시간만 일한 사람과 온종일 일한 것을 비교하니 억울할 수밖에.... '하느님은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똑같이 햇빛을 비추어 주신다.'라는 말이면 좀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 나 역시 100% 선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렵기에, 내가 맨 나중에 온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2024.08.21 -
이 일이 일어나면, 그제야
에제키엘이 이렇게 너희에게 예표가 되고, 그가 한 것처럼 너희도 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나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에제키엘 예언서 24,24 사람들은 왜 경고를 무시하고, 일이 일어난 다음에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일까? 비단 하느님의 일 뿐만 아니라, 뉴스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사건 사고들이 분명한 전조가 있었음에도 그것을 무시하다 발생한 것임을 본다. 갑자기 아무런 조전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하느님께서도 예언자들을 통하여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셨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백성들 때문에 많이 답답하셨을 듯하다. 나 역시 그 답답함을 더하는 존재는 아닐까? 성서를 읽는다. 묵상한다. 이것은 내가 무뎌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기억하기 위하여, 하느님과 함께 하려는 노..
2024.08.19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요한 복음 6,53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강조하시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충격적인 말씀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지금이야 성체성사를 생각한다지만, 그때 저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충격은 참 컸을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저 말씀 때문에 떠나가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살을 먹고, 피를 나눈 다는 이야기는 하나가 됨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그분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분처럼 생각하고, 그분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분과 같은 삶을 살아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
2024.08.18 -
죄악에서 돌아서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집안아, 나는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회개하여라. 너희의 모든 죄악에서 돌아서라. 그렇게 하여 죄가 너희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여라. 에제키엘 예언서 18,30 하느님은 구약시대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회개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무엇에 대한 회개인가? 답은 에제키엘 예언서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모든 죄악에서 부터의 회개이다. 시대가 바뀌고, 인간들의 법이 바뀌어 죄악의 기준들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 그분이 보시기에 어떠신가. 즉, 양심에 따른 기준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양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통용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있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어떤 일을 할 때에 내가 죄악이라고 느..
2024.08.17 -
완고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마태오 복음 19,8구약시대 부터 이어져온 율법을 예수님은 완성하고자 하신다.처음부터 너희가 융통성이 없이 올곧고 고집이 센 사람이 아니였다 말씀 하시면서, 완고함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계신 예수님. 그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완고한 인간들 가운데 일하다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면서도 완고함을 버리지 못하였다. 여전히 완고한 마음과 행동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음을 본다. 거리에 수놓은 수많은 십자가가 무색하게 우리는 여전히 완고하다. 완고한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완고함을 유지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은 모든 상황에..
2024.08.16 -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오 복음 18,20 가족이 같은 신앙을 갖고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하나의 이름 아래 모인 하나의 가족. 참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길, 그분을 닮아가길 보이지 않아도 노력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족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아가 하느님의 부제를 느낀다면 이곳에 머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하느님 안에 머물며 살아야 그 모습을 보고 모일 수 있다. 그렇게 모여 있어야 하느님 안에서 머물 수 있다.나만 그 순환의 고리가 보이는 것일까? "나는 여기에 너희를 위해서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 하..
2024.08.14 -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오 복음 18,14 나는 최후의 심판날이 빨리 왔으면 하고 바랬던 적이 있다. 지구의 환경과 지구에 있는 수많은 생명을 생각하면, 인간을 세상에 계속 두지 않는 것은 보시기에 좋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세상은 여전히 불의와 죄인들, 불신과 미움, 다툼과 분열일 쉽게 만날 수 있으니 여기서 인간들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심판과 하느님 나라의 재림 이외에는 없어 보였다. 어제와 같은 오늘. 하느님께서는 심판하지 않으시며, 세상에 손을 대어 바꾸지 않으신다. 그 이유는 우리 중 하나라도 잃고 싶지 않으신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한 명 한 명 언젠가는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계시기에 쉽사리 심판을 하지 않으시는 듯..
2024.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