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묵상(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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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문하셨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2,48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다. '그래, 나를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너는 누구니? 나와 같이 다니던 사람이니?'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라고 말씀하신 분이시니, 당신의 길을 함께 걷지 않는 이는 그분에게는 他人 일 수밖에 없다.나는 그분을 길을 걷고 있는가? 아버지 안에 머물고 있는가?이 질문에 '늘 그러하다!'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늘 부족한 삶을 살고 있다. 당신을 기억하고 살기보다는 일상에 잊고 살 때가 더 많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수도자들처럼 일하며 기도하며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수학 문제를 푸는 학생처럼, 퍼즐을 맞추는 아이처럼..
2024.11.21 -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9,21 나에게 하느님은 어떤 주인인가? 탕자의 비유에서 처럼 아버지는 사랑으로 받아주시는데, 내가 다가가지 못하며 종임을 자처하고 있는가? 무관심하게 모든것을 바라만 보시는 분이신가? 칼같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시는 분이신가? 나만 바라봐 달라고 질투를 하시는 분이신가? 과거의 나의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이 셨다. 그래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다 왜 세상의 불의를 놓아두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그분은 방관하시는 분,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으신 분이라 느껴졌다. 하지만, 하느님을 만난 많은 분들이 그분을 사랑의 하느님이라 말씀하신다. ..
2024.11.20 -
이러한 일들이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13,29 세상의 일들을 본다. 늘어나는 예언들도 종말에 대한 예언들이 많다. 대공항, 천재지변, 화산폭발, 온난화, 혹한, 가뭄, 대지진, 해일. 온갖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찬 세상.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하기보다는 '혹시'하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도 세상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분명 우리도 느끼고 있다. 우리 세대에서 멈추지 못하면 사라질 많은 것들이 있음을. 또 어떤 것은 지금 멈춘다 하더라도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재활용품을 분리수거 하고,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있지..
2024.11.17 -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8,7 내가 하느님께 밤낮으로 요구하는 것이 있는가? 그런 것이 없다면, 나는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죽어 있는 것일까? 갖고 있는 사람은 요구할 필요가 없다. 죽어 있는 사람은 요구할 수 없다. 나는 어느 쪽일까?죽어 있는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쌓이는 일들을 해치우듯 하다가 저녁이 되면 지쳐 잠들고 아침에 다시 일터로 나가는 것을 반복하는 그런 삶. 살아 있음에 감사하지만, 삶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짐이 더 무거워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노예신세. 아~ 그러고 보니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노예신세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부르짖을..
2024.11.16 -
새 계명이 아니라
부인, 이제 내가 그대에게 당부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써 보내는 것은 무슨 새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지녀 온 계명입니다.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한 2서 4,5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을 기억해 냈다. 삶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해내려 하다 보니 기초적인 것들을 잊어버린 것 같다. 누구나 알고 있었던 것이 옅어지고, 잊힌다. 의미를 잃은 단어만 남는 순간을 보게 된다. 그 대표적인 단어가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이야기되는 '사랑'이라는 단어이다. 모든 선택과 행함의 순간에 '사랑'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 다면 세상은 하느님 나라에 많이 가까워진 모습을 보일 것이다. '사랑'을 기준으로 삼고 싶으나,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아야 하는 세상, 더..
2024.11.15 -
너희 가운데에 있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7,21 파랑새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렇게 찾아다니던 파랑새는 집에 있었듯이, 하느님 나라도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왜 난 이곳이 하느님 나라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나 스스로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은 하느님 나라를 찾아다녀서 그곳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하느님 나라를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녹]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독서와 복음 바로가기
2024.11.14 -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7,17 오늘 하루, 이 시간까지 살아 있음도 하느님의 은총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연히 이렇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처리를 비관하며 삶을 고통의 바다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은 아홉 명이 모두 같은 상황, 같은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러 가지 주위의 상황들과 사람들 사이게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릴 타이밍을 놓쳤을 수도 있지 않을까?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나는 어떠한가? 바쁨 속에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사람의 일들 속에서만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침에 일어..
202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