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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죽은 것이다.
사르디스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 요한 묵시록의 말씀 3,1 요즘의 나에게 하시는 말씀 같다. 깨어 있지 않다. 육체적으로 깨어있는 시간은 일속에 묻혀있다. 깨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쳐본다. 새벽미사를 드리러 가고, 촛불을 켜고, 성서를 쓰며 깨어나기 위한 노력을 해보지만,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 마냥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벗어나야 한다고 하지만, 계속 빠져드는 개미지옥 속에서, 생각의 시간은 점점 더 느려지고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진다. 죽음이다. 다행인것은 죽음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것, 새로운 출발은 죽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
2024.11.19 -
외쳤다.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8,39 지금 나는 간절 것이 있는가? 주변사람들의 만류에도 소리 높여 외칠 만큼 절실한 것이 있는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부족한 부분에 불평을 하면서도,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 것은 외칠 것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외쳐야 하는데 외칠 수 없는가?두려움이 있다. 주변의 시선이 무섭다. 외면 받을까봐 두렵다. 쫓겨나고 그다음이 두렵다. 다시 어떻게 이들을 볼까? 외치려 했었지만 두려움이 앞을 가려 결국 외치지 못했다.'간절하지 않아서'라고 이야기 하지는 말라. 많은 곳으로부터의 거절로 오늘도 거절당할까 봐 당당히 요구해야 할 것임에도 요구하..
2024.11.18 -
이러한 일들이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13,29 세상의 일들을 본다. 늘어나는 예언들도 종말에 대한 예언들이 많다. 대공항, 천재지변, 화산폭발, 온난화, 혹한, 가뭄, 대지진, 해일. 온갖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찬 세상.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하기보다는 '혹시'하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도 세상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분명 우리도 느끼고 있다. 우리 세대에서 멈추지 못하면 사라질 많은 것들이 있음을. 또 어떤 것은 지금 멈춘다 하더라도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재활용품을 분리수거 하고,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있지..
2024.11.17 -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8,7 내가 하느님께 밤낮으로 요구하는 것이 있는가? 그런 것이 없다면, 나는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죽어 있는 것일까? 갖고 있는 사람은 요구할 필요가 없다. 죽어 있는 사람은 요구할 수 없다. 나는 어느 쪽일까?죽어 있는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쌓이는 일들을 해치우듯 하다가 저녁이 되면 지쳐 잠들고 아침에 다시 일터로 나가는 것을 반복하는 그런 삶. 살아 있음에 감사하지만, 삶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짐이 더 무거워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노예신세. 아~ 그러고 보니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노예신세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부르짖을..
2024.11.16 -
새 계명이 아니라
부인, 이제 내가 그대에게 당부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써 보내는 것은 무슨 새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지녀 온 계명입니다.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한 2서 4,5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을 기억해 냈다. 삶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해내려 하다 보니 기초적인 것들을 잊어버린 것 같다. 누구나 알고 있었던 것이 옅어지고, 잊힌다. 의미를 잃은 단어만 남는 순간을 보게 된다. 그 대표적인 단어가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이야기되는 '사랑'이라는 단어이다. 모든 선택과 행함의 순간에 '사랑'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 다면 세상은 하느님 나라에 많이 가까워진 모습을 보일 것이다. '사랑'을 기준으로 삼고 싶으나,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아야 하는 세상, 더..
2024.11.15 -
너희 가운데에 있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7,21 파랑새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렇게 찾아다니던 파랑새는 집에 있었듯이, 하느님 나라도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왜 난 이곳이 하느님 나라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나 스스로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은 하느님 나라를 찾아다녀서 그곳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하느님 나라를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녹]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독서와 복음 바로가기
2024.11.14 -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7,17 오늘 하루, 이 시간까지 살아 있음도 하느님의 은총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연히 이렇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처리를 비관하며 삶을 고통의 바다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은 아홉 명이 모두 같은 상황, 같은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러 가지 주위의 상황들과 사람들 사이게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릴 타이밍을 놓쳤을 수도 있지 않을까?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나는 어떠한가? 바쁨 속에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사람의 일들 속에서만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침에 일어..
202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