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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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았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17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세상. 사람은 서로 '틀리다'가 '다르다'로 표현되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유독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나는 정상, 그는 비정상으로 단정해 버린다. 사람에게 이리 하듯 하느님께도 기도를 가장해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당신이 계시다면 세상이 왜 이모양입니까?'라는 질문 속에는 내가 바꾸고 싶은 내 기준의 세상이 있었고, '도대체 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이상한 건가요?'라는 질문 속에는 내 편을 들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결국 나는 한발 물러서 나를 바라보기 보다는 '하느님은 무조..
2024.12.13 -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12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람은 늘 존재해 왔다. 폭력이라는 부분은 꼭 물리적인 것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언어로 정신에 가하는 폭력이 훨씬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상처를 남긴 사람은 그 상처를 알지도 못할뿐더러, 더 나가 상처 입은 사람들을 비하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이러한 폭력 앞에서 하느님께 기도 하는 것 만이 답일까? 무력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 답일까? 힘을 힘으로 누른다면 언제가 그 힘이 사라졌을때 혹은 더 큰 힘이 나타났을 때, 평형을 이루고 있던 균형은 깨지기 마련이다. 그것을 알기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
2024.12.12 -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28 '영원한 안식' 죽음을 떠 올리고 피식 웃었다. 죽음을 과연 영원한 안식이라 부를 수 있을까?라는 것으로 생각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죽은 후에 하느님의 먼발치에라도 있을 수 있어야 안식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스스로를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생각한다. 그리고, 편안한 안식을 바란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답은 그분께로 가는 것이라고 성서는 이야기 하고 있다. 나에게 오라 그러면 안식을 주겠다는 말만큼이나 명확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여기서 질문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께로 가는 것인가?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에게 처럼 가는 길에 노란 벽돌길이 깔려..
2024.12.11 -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8,14 아버지의 뜻을 안다고 이야기하지만,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그분이 그렇다시니 그런가 보다 정도의 이해이다. 현실을 바라보면, 하나라도 잃지 않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고 해도, 이리 저리 날뛰는 우리 밖의 양들이 너무나 많다. 늑대를 늑대라고 생각하지 않고 대가리를 디미는 놈부터, 자기가 늑대를 이길 수 있다고 믿는 놈, 늑대가 없다고 믿고 날뛰는 놈 등등 다양한 위험 속에 자신을 밀어 넣는 이들이 많이 있다. 아버지는 이런 양들을 구하시려 아드님을 보내셨지만, 그분이 승천 하신 이후에는 성령과 함께 그분의 제자들과 지금의 우리가 함께 구원 사업을 해야 한다. 하느님의 구..
2024.12.10 -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가 대답하였다.“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창세기 3,10 두려움. 우리는 두려우면 벗어나려 한다. 그곳에 계속 머물면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 가기에 그 곳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려 한다. 하지만, 그분의 눈을 피해 숨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없을 것임을 아는데도, 우리는두려워 숨는다.집에서 장난을 치다 혼난일이 생기면 뻔히 부모님이 알아차릴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가 안했어요.', '몰라요.'를 시전하고 있는 초등학생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 보인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용서하여 주실 것을 아는데도 갖게 되는 이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누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 잘못을 저지르고도 적반하장인 사람들이..
2024.12.09 -
이것이 바른길이니 이리로 가거라.
그리고 너희가 오른쪽으로 돌거나 왼쪽으로 돌 때 뒤에서 ‘이것이 바른길이니 이리로 가거라.’ 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 이사야서 30,21 매일 나의 길을 걷는다. 타인과 마주칠 때도 있고, 나란히 걸을 때도 있으며, 주면에 아무도 없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이렇게 길을 걷으며,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를 늘 고민했지만, 어느 순간 얄팍한 수 싸움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엉거주춤 이길로 아니고 저길도 아닌 것처럼, 코앞의 목적지가 가고자 하는 곳이 아닌 것처럼 삥~~ 돌아 다른 길로 가거나, 멈추어서 다른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리기도 한다. 세상에서는 길을 잃은것 같다면 멈추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로 향하는 길에서는 불확실하 다해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2024.12.07 -
저 군중이 가엾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5,32 당신이 보시기에 군중이 가엾지 않은 때가 있었을까? 당신은 우리를 가엾게 보시어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 약속은 구약시대로부터 신약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당신 발치 앞에 머무는 것. 떠나지 않고 머무는 것만으로도 굶주리지 않게 될 것이다.나는 당신의 약속을 믿기에 오늘도 당신 곁에 머문다. 한끼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당신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당신을 따르던 군중처럼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자] 대림..
2024.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