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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마태오 복음 10,2 기억되는 이름과 기억되지 못한 이름들. 열두 사도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을 것이다. 그들은 열두 명에 뽑히지 못한 것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제자들 중에서도 하나는 오른편, 하나는 왼편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 열두 제자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을 많이 아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름이 기억된다는 것은 그만큼의 무게가 따른다. 행적 하나하나가 남고 그 행적은 스스로가 생각할 때 부끄러운 일조차도 까발려져 회자되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 무명의 순교자들을 보면 이름을 남긴 다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2024.07.10 -
청하여라.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마태오 복음 9,38 바쁘다는 핑계로 하느님과의 대화는 잠들기전, 일어나서 뒤척이며 등 스치는 시간에 동네 사람들과 인사 나누듯 이야기 한다. 전공서적 보다도 집중해서 읽지 않는 말씀. 씩 읽어 내려가며 출석체크 하듯 시간을 보내는 것.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 잘못되었다는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일까? 잘못 된것을 알았으면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 무엇에 바쁘며 조급한 마음을 갖는 것일까? 그렇게 조급하게 일한다고 해서 많은 것을 해결한듯 보이지만, 공허함만 남는다. 조급함에서 위에 이야기한 모든 것이 오는 듯하다. 답답하다. 그리고 피곤하다. 많은 것을 한것 같으나, 많은 미룸을 남긴 이시간. 일꾼을 청하기 전에 내가 성실한 일..
2024.07.09 -
구원을 받겠지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 9,21 나는 나의 어떤 행동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 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어떤 실천을 하고 있었을까?주일 미사에는 빠지지 않으려 한다. 하느님께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가기 싫어도 준비가 안되어 있어 맨 뒷자리에서 '기리에'만을 노래하더라도 성당으로 향한다.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어떻해서든 그분과의 관계를 작은 것 하나라도 이어놓으려 노력한다. 그중 하나가 이렇게 매일 복음과 독서를 읽고 그 복음과 독서에서 눈길이 머문 글귀를 묵상한다.이런 것들로 인하여 내가 구원될 수 있을까?라고 묻는 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옷에 손을 대는 작은 행동으로 구원을..
2024.07.08 -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마르코 복음 6,5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하느님일까? 사람일까?많은 사람들이 작은 일에도 기적을 이야기한다. 나는 그것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개개인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 주고, 하느님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좀 다른 듯 하다. 기적을 보기 드문 케이스라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이야기하고, 또 다른 이는 우연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굳이 기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냥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쉽게 생각해 내가 기적이라 믿으면 기적이고, 선물이..
2024.07.07 -
올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오 복음 9,15 죽음을 생각한다. 언젠가 분명히 올 날. 하지만, 언제일지 알 수 없는 날. 천수를 누리기를 원하지만 뉴스의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내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고 불안해할 것인가? 내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불안해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내일 죽을지 모를 나를 슬퍼하는 것보다. 하느님이 주신 오늘에 감사하며 기뻐해야 할 것 같다.깊이 묵상하고 하느님의 사업에 참여하며, 기뻐하고 즐거워 하여라. 지금 살아 있음에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음에. 그것이 이곳에서 ..
2024.07.06 -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5 종이컵에 물을 담아 책상에 부어보자. 그 물은 어디에 있는가? 분명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이렇게 부어진 하느님 사랑은 어디 있을까? 내가 모래사장인 듯 모든 것이 빠져나가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듯 보인다.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하루하루 도시의 정글에서 생존하기에만 급급한 하루살이가 된 나에게 남는 것은 없다.이곳이 도시의 정글이 아닌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만,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만 있는 장소라면 지금의 상황이 바뀔까? 그렇지 않을 듯 하다. 변화 없는 하루살이의 삶은 죽음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
2024.07.05 -
생각하였다.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마태오 복음 9,3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나치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보이는 것만으로 들리는 것만으로 소설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고 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주체는 결국 나이기에, 나를 벗어나 그와 같은 입장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나와 같을 수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을 나에게 맞추어 보려고하다가 상처 주고 상처받는 모습들이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모습은 분명 아닐 것이다. 판단하지 말자. 숨은 의도를 해석하려 하지 말자. 객관적인 사실만 보도록 노력하자.[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2024년 07월 04일 목요일 ..
202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