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2024. 12. 27. 01:00ㆍ렉시오 디비나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2,2
나는 주님을 어디에 모시고 있는가? 주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고 있는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생존이라는 것을 핑계로 하느님과의 시간을 뒤로 미룬다. 성당에 가지만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닌 성당일을 하러 가 사람들만 만나다 돌아온다. 이러면서 신자라 말할 수 있을까? 하시가 이탈리아 사람들은 태어나 세례 받을때 한번, 결혼할 때 한번, 죽어 묻힐 때 한번 이렇게 세 번 성당에 가는 이들도 물어보면, 신자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교회법상 세례를 받으면 파문당하지 않는 한 신자이긴 하다. 하지만, 내가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한다면, 내가 하느님과 함께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신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예수님을 간절히 찾았던 제자들을 본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이들을 본다. 그들보다 신학적으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을 허락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오늘 주님을 만나기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