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2024. 8. 28. 01:00하느님 그리고 나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마태오 복음 23,30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이 말 자체도 핑계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우리는 말한다. 구약시대의 조상들처럼 하느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더라면, 신약시대의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직접 뵈올 수 있었다면, 아니 예수님을 직접 뵈었던 제자들이라도 직접 볼 수 있었다면, 나의 신앙이 더 커졌을 텐데...

 

꿈깨라!!! 그런 일은 없다. 지금도 우리는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라고? 잘 생각해 보라. 하나뿐인 지구를 이렇게 만들고 있고, 가장 까까운 이웃이라고 부르는 가족에게 조차 화를 내며 그 사유를 정당화한다. 그런 상황에서 나와 상관없다 판단한 예언자 하나를 죽이는 것이 뭐 대수랴? 내가 믿는 것은 무조건 정답이며, 나와는 다른 의견은 다름이 아닌 틀린 것임을 말고 있으면서 과연 나는 예언자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고 있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예언자들은 이야기한다. 세상의 것들과 인간의 일들에 비추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 아님을. 

이렇게 예언자가 이야기해 줄 때가 행복한 때이다. 회계하고 하느님께 돌아갈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이 자신의 신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리고, 침묵하는 순간이 오지 않도록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예언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라. 지금 우리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 이가 이 땅의 마지막 예언자 일 수도 있으니...

 

이 나무를 자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안심하지 말고 지구를 위해서 무엇을 하지 못했는지 생각해 보라

 

[백]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2024년 08월 28일 수요일 독서와 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