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3. 01:00ㆍ하느님 그리고 나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6,39
우리는 잘 살고 있을까요? 스스로의 자리에서 아버지로, 아들로, 어머니로, 딸로, 교사로, 상사로, 부하직원으로, 이 땅의 국민으로, 신자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 순간, 순간에 우리는 그 이름에 맞는 이로 잘 살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천국에서 별처럼 빛나기를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왕으로서, 사제로서, 예언자로서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봐야 합니다. 왕이라 뽐내고, 사제라 고귀한척 하며, 예언자라 겁주는 것은 아닌 각 직분에 맞게 왕으로서 백성을 보살피고, 사제로서 경건하게 하느님과 소통하며, 예언자로서 불의에 경고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 바닥에 발을 들인 이상 쉽게 살아갈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두를 구덩이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넘어가는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삶이 되겠지만, 누군가를 인도해야 한다면(의무나 억지로 하는 인도가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정이기 때문에라도) 늘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쉽지 않음을 알고 있으며, 누구에게도 그 여정이 쉽다고 이야기 할수 없습니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내가 사랑하는 분께 향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초점을 맞추고 걸어가야 함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다른 곳에 신경을 쓴다거나, 졸면서 걷는 길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