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만을 위하여

2024. 9. 20. 01:00하느님 그리고 나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15,19 

 

나는 얼마나 현세의 것에 희망을 두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현세의 것의 대표적인 것은 '돈'입니다. 부자이고 싶습니다. 이번 추석 명절 때 한 기사에서 명절에 받은 용돈도 세금을 내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1억이 넘으면 그러하다는 내용을 읽으며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만의 리그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등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라 생각하면서도 말입니다.

 

잘살고 편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청빈을 이야기 하지만, 내일 내야 할 공과금과 마스너스 통장의 한계, 높아지는 대출 이율 등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은 벌고 싶은 것이 저의 마음입니다. 대출 이율을 계산할 시간에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먹고 놀기 바빠 하느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보다, 오늘의 끼니때문에 당신을 찾는 사람을 더 반기시며 일부로 그런 상황을 만들지는 않으시겠지요. 하느님 안에 머물다가도 현세의 즐거움에 눈을 돌리게 되는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스스로도 만나기에 지금의 나를 돌아봅니다. 내가 왜 하느님을 찾고 있는지. 왜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는지 말입니다.

 

최소한 현세만을 위한 것은 허무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갖고 떠날 수 없을 도 알고 있습니다. 많이 받은 만큼 많이 주어야 함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앎 속에서도 지금 나의 희망이 현세의 것을 위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현세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 말 자체가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끊임없이 질문하며 당신 옆에 머물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현세만을 위한 기복신앙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의 묵상 속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며 스스로를 놓치지 않는 삶이 되길  바래봅니다.

 

하느님을 자신의 것인양 움켜쥐지 않기. 흘러가는 구름처럼 하느님의 손길에 감사하며 나를 맞기기.

 

[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24년 09월 20일 금요일 독서와 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