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2. 01:00ㆍ하느님 그리고 나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수하고,
그다음으로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3,17
나는 생존이라는 핑계로 뱀의 지혜만을 추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세상의 것들을 알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유리한 듯하다. 어떤 적금이 이율이 높고, 이번에 아파트 분양은 무조건 넣아야 하고, 어떤 카드는 어떤 것이 할인되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와 일을 위한 관계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쉽게 상황을 해결할까에 중점을 두게된다. 이 안에는 감정은 있을지언정, 마음은 없다. 그래서일까 요즘 읽는 책에서 '마음 읽기'와 '마음 헤아리기'라는 단어가 크게 다가왔다.
내가 청하는 지혜는 순수하지 않다. 현재 사람들 사이의 나를 보면 "왜 나만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나?"라는 질문을 자주하고 있기에 '마음 헤아리기'보다는 상황을 정리하기 위한 지혜를 요구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지혜에 순수함과 순수하지 않음이 있을까?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함께 내가 선택한 해결책이 당신이 보시기에 좋은 해결책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도 같이 청해야겠다.
해결책을 앞에 놓고 드라마의 대사처럼 질문을 해본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고. 순수, 평화, 관대, 유순, 자비, 편견과 위선이 없는 '최선'이 '확실'한 지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최선이 아니더라도 순수, 평화, 관대, 유순, 자비, 편견과 위선이 없는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 아닐까?
[녹] 연중 제25주일
2024년 09월 22일 일요일 독서와 복음